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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현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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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함과 정직함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 여수는 내 삶을 만들고 지탱해준 에너지의 원천

    주철현 시장은 여수시 문수동 허문마을 목수 집안에서 4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 나무처럼 단단했던 아버지, 논밭처럼 푸근했던 어머니는 성실함과 정직함을 유산으로 물려주셨다.

    다섯 살 때부터 소를 먹이러 산에 오르고, 논과 밭으로 일을 다니고, 지게질을 했다. 부모님을 도와 안 해본 농사일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곧 쓰러질 것 같았던 무거운 지게질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날도, 농약을 치다 독한 농약에 중독돼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날도 있었다.

    소를 풀어놓고 친구들과 뛰고 뒹굴고 공을 차던 성주골 몬당, 질퍽대는 갯벌에서 새조개를 캐먹고 물놀이를 하던 솔개 바다, 돌을 굴리며 놀다 산 아래 밭주인에게 혼이 났던 신월동 언덕, 부족한 공부 시간을 벌충하느라 손에 책을 들고 걷다 얼굴을 긁혔던 구봉산 등굣길, 그 숱한 지난날들은 결코 아픔과 상처의 세월이 아니었다.

    튼튼한 두 다리와 강한 체력을 길러주었고, 주어진 어떤 일도 피하지 않고 끝끝내 해내는 강단과 의지를 심어준 날들이었다. 마음을 쑥쑥 키우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실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고향 여수는 그렇듯 삶의 모든 것을 만들고 지탱시켜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 소처럼 우직한 노력으로 사법시헙 합격의 문을 열다. 법조인의 꿈을 향한 도전은 시작되었다.

    힘 없고, 돈 없는 부모님과 이웃들의 아픔을 보면서 법조인의 꿈을 어린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도전은 시작되었다. 학창시절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소처럼 우직한 노력으로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1985년 사법연수원 제15기 수료후 3년 간 육군 법무관으로 근무한 뒤 1989년 2월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되었다.
    공직생활은 또 다른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 있게 일 했던 검사, 든든한 배경도, 풍족한 재산도 없었던 그에게 믿을 것은 오직 스스로의 노력뿐이었다.

    대검찰청 유일의 호남 출신 검사로 공정선거를 감시해 97년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에 일조하기도 했다. 특유의 뚝심으로 서울지검 특수1부장, 광주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호주제 폐지 법안 발의, 서민을 위한 벌금대체 사회봉사제 도입, 성폭력범 전자발찌 최초 부착, 검찰 시민위원회 구성 등 숨가쁘게 달려왔다. 검찰 관리직으로, 세 차례의 법무부 근무로 풍부한 행정 경험도 쌓았다. 2011년에는 ‘자랑스런 여수인’으로 선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대한민국 인권부문 법률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공직생활 30년 동안 단 한 번의 구설에도 오른 적이 없이 여수 출신 검사의 자부심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시민들의 간절함을 보고 느끼며

    스무 살 청춘에 고향을 떠난 지 3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국가공무원이 된 지 30년 만에 한 마리 연어처럼 꿈에도 그리던 여수로 돌아왔다. 대형 로펌들의 영입 제의를 뿌리치고 법률 서비스가 열악한 고향 여수에 돌아와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법조인의 꿈을 키우면서도 고향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그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긴장과 경쟁의 연속이었던 공직생활을 끝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홀가분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향의 선후배와 친구들, 그리고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역 곳곳을 누비며 지금 여수의 현실에 위기와 실망을 느끼고 좌절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시민의 간절함도 직접 보고 느꼈다.

    그토록 열망하던 세계박람회를 치러낸 여수시민의 자긍심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세계박람회를 성공 개최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박람회를 준비하던 기간에 보였던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여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이 간절한 시점에 와 있었던 것이다.

    흩어진 시민들의 역량을 다시 모으고,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됐다. 박람회장 사후활용의 매듭을 풀고, 일자리도 늘리고, 여수항의 불빛이 더 밝아져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도록 ‘소통여수’, ‘활력여수’, ‘행복여수’, ‘푸른여수’를 열어가는 것이 반드시 해 내야 할 소명이라고 굳게 믿는다.

    '시민여러분이 시장'이라는 초심을 변하지 않는 시정의 원칙으로 삼아 시민이 참 주인이 되는 새정치를 반드시 정착시켜 나가겠다.